벽 2
박지현
재개발 아파트 단지 반쯤 무너진 벽들
분홍색 벽지들만 바람에 나부낍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곰팡이꽃만 피웠습니다
한땐 등 기대고 울타리가 되었던
비바람 눈보라를 묵묵히 끌어안고
쩍쩍쩍 금이 갑니다, 침묵의 오랜 날들이
대못에 박힌 자국 아직은 그대로인데
부서져 가루가 된들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금가고 틈이 벌어져 벌레 하나 키웁니다
그대 마음속에 집 한 채 지었던 날
숱한 밤 허물고 또 세웠던 그 벽들이
못 박혀 벌어진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 시집『저물 무렵의 詩』에서/ 2010.5.4 도서출판 고요아침 펴냄
* 박지현(박해림)/ 부산 출생, 2001년 《서울신문》《부산일보》신춘문예 시조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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