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177

풍년이 왔네 외 1편/ 최지원

풍년이 왔네 외 1편     최지원    태풍은 무사히 비껴가라던  무논 청개구리 덕분이야  어린 모 사이사이 벌레 잡아주던  오리가족 덕분이야  밤낮 한눈팔지 않고 지켜주던  허수아비 덕분이야  개갱~개갱~지잉~지잉  꽹과리, 징 울리며  두둥~두둥~더덩~더덩~  소고, 북, 장구 치며  얼씨구 좋다!  풍년이 왔네!  덩달아  누렇게 어깨 춤추는 벼  가을하늘 돌리는 잠자리  가을볕 데리고 뛰는 메뚜기  풍년이 왔네!  얼씨구 좋다!       -전문(p. 98)        ---------------------    목련이네 응원레시피    화단 구석 목련이네  뒤늦게 부풀어 오른 아이스크림빵  발효가 늦어지자   봄비: 촉촉하게 무한그램  봄바람: 살랑살랑 무한그램  보름달: 보송보송 무한그램 ..

동시 2024.12.02

열대야/ 최지원

열대야     최지원    여름 나무는  쨍쨍 햇살 실로  초록 그늘을 짠다   더위에 지쳐도  짜고 또 짜다가   늦은 밤까지  매미 알람 켜놓고   청청 남아도는  햇살 실로  초록 그늘을 짠다    -전문-   발문> 한 문장: 2024년 여름은 무더웠다. 견디기 힘들 만큼 어려웠다. 기후 위기를 누구나 떠올리게 했다. 가을이 오는 일이 이렇게 반가운 일인가 싶을 만큼. 하지만 이런 극성스러운 올해 여름이 앞으로 다가올 여름 가운데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말이 부디 나쁜 뉴스이기를 바라는 바다.  극성스러운 더위만큼 올해 매미도 극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매미들은 낮에는 쉬지 않고 울다가도 밤이 오면 내일 울 일을 가슴에 품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올여름은 매미들도 열대야를 견디기..

동시 2024.12.02

편지/ 윤석산(尹錫山)

편지     윤석산尹錫山    오뉴월 꽃그늘이 드리우는 마당으로 우체부는 산골 조카의 편지를 놓고 갔구나. 바람 한 점 흘리지 않고 꽃씨를 떨구듯.   편지는 활짝 종이 등을 밝히며 서로를 파란 가슴을 맞대고 정겨운 사연을 속삭이고 있구나   찬연한 속삭임은 온 마당 가득한데, 꽃씨를 틔우듯 흰깁을 뜯으면 샘재봉 골짜기에 산딸기 익어가듯 조카는 예쁜 이야길 익혀 놨을까.   모두 흰 봉투에 숨결을 모두우며 꽃내음 흐르는 오뉴월 마당으로  「석 산 인아 저 씨 께」  아, 조카가 막 기어다니는 글씨 속에서 예쁜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구나.    -전문(p. 22)/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 블로그 註/ 깁: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바탕을 조금 거칠게 짠 비단(Daum 검색)  ..

동시 2024.11.17

금시아(글), 최영란(그림) 동화집『똥 싼 나무』 「할머니도 부끄러워요?」

할머니도 부끄러워요?     금시아(글) / 최영란(그림)    "향아야, 빨리 학원 가야지."  엄마가 주방에서 큰 소리로 재촉한다.  "네. 갑니다. 할머니도 빨리요"  향아는 할머니 손에 노래 가방을 들려 주고 제 피아노 가방도 얼른 챙겨서 나간다.  발소리 뒤로 현관문이 쾅, 닫힌다.   할머니는 혼자서 농사지을 정도로 건강했었다.  그런데 많이 아파서 지난봄에 향아 집으로 왔다.  할머니는 예전과 다르게 모든 게 느려졌다.  그렇게 말도 행동도 어눌한 할머니가 민요를 배운단다.   "엄마, 민요가 얼마나 어려운데 어떻게 배워요?"  "아냐, 이젠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해 보고 싶구나."  엄마가 말렸지만 할머니는 기어이 동네 복지관 민요반에 등록했다.  그날 밤 향아는 엄마가 아빠랑 나누는 이..

동시 2024.10.03

생각 괴물/ 권기덕

생각 괴물      권기덕    내 머릿속엔  괴물이 살고 있어요   괴물은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달아나지 않아요   괴물 없이 산다는 건 불가능해요   괴물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면 큰일나요  반대로 행동해야 해요   어쩌면 난  괴물이 공부하라고 해서 안 하고  괴물이 청소하라고 해서 안 하고  괴물이 운동하라고 해서 안 하는 거예요   어쩌면 난  괴물이 화내지 말라 해서 화내고  괴물이 까불지 말라 해서 까불고  괴물이 휴대폰 게임하지 말라 해서 한 건지도 몰라요     가끔은 괴물을 잊고  그대로  행동했는지도 몰라요     -전문(p. 135)   -------------------  *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 에서  * 권기덕/ 2009년 『서정시학』으로 시 부문 &  20..

동시 2024.09.04

불구경/ 옥인정

불구경      옥인정    불 났어요  불 났어요  큰 불이 났어요   불빛은 알록달록해요  빨강  노랑  초록  배우고 있어요   팔도 사람들이 몰려와요  불 색깔에 맞추어  오색 옷들을 갖추어 입고  누군가 불 지른 가을 산  불구경 다녀요    -전문(p. 154)  ----------------  * 반년간 『미당문학』 2024-하반기(18)호 > 에서  * 옥인정/ 전남 무안 출생, 2023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동시 부문 당선

동시 2024.09.01

귀를 대고 진찰하는 아이/ 이민배

귀를 대고 진찰하는 아이      이민배    그 의사는  청진기 대신 귀를 대고 진찰한대   건강한 심장 소리를 들으면  폭신한 가슴 위에서 부둥켜안고 잠을 잔대   그 의사를 좋아하는 엄마는  설렘으로 기뻐 뛰는 심장 소리에 놀라 깰까 봐  숨소리도 살금살금  발소리도 살금살금   새근새근 자는 귀여운 모습만 봐도  엄마의 피곤은 사라진대.   정말 훌륭한 아기 의사야!     -전문(p. 67)     --------------   * 『문학매거진 시마 SIMA』 2023-가을(17)호 동시)>에서   * 이민배/ 2020년 『한국문학예술』에 동시 당선

동시 2024.08.21

선풍기/ 박소윤

선풍기      박소윤    선풍기는  아주 빠르게 돌아요   내가 선풍기면  힘들 거 같아요   내가 하루 종일 돈다면  너무 어지러울 거예요   선풍기는 계속 도는데  얼굴이 빨간색이 안 돼서  신기해요   우리는 더운 바람 주는데   선풍기는 우리한테  시원한 바람을 주어서 고마워요     -전문(p. 75)     --------------   * 『문학매거진 시마 SIMA』 2023-가을(17)호 >에서   * 박소윤/ 인천가현초등학교 3학년

동시 2024.08.16

식은 죽 먹기 외 1편/ 이상우

식은 죽 먹기 외 1편      이상우    노랑 개나리꽃 피는 봄날 !  입학생이 담장 위에 오뚝이처럼 서 있다.  "너 왜 담을 넘니?" 하지 않고     너 대단하다.  그렇게 높은 곳을 넘는구나 !   알토란같이 하얀 아이는     이런 것은 식은 죽 먹기예요.  합기도를 하거든요.     그러니, 합기도 대단하구나 !     검도도 해요.     검도까지 너 정말 대단한 아이다.  그런데 너 식은 죽 먹어봤니?     식은 죽, 식은 죽이 뭐예요?     식은 죽은 말이다. 아주 쉬운 것이다.   입학생은 파랑 운동화를 신고  운동장을 사로질러 뛰어간다.  뒤에다 대고     옛날에는 말이다.     식은 죽 먹기도  무척 힘이 들었다.     식량이 부족했으니까?        -전문(p. 58..

동시 2024.07.22

물총 싸움/ 이상우

물총 싸움     이상우    남녀 학생이 그늘 밑에 모였다  선생님의 고함소리에  남학생이 수돗가로 뛰어간다  어미젖 먹는 돼지처럼 물을 넣는다.   남녀 학생이 그늘 밑에 모였다  선생님의 교대 신호에  여학생이 수돗가로 뛰어간다  뽕잎을 먹는 누에처럼 물을 넣는다.   남녀 학생이 운동장에 뛰어간다  선생님의 손짓 하나로  오리물총 개구리물총을 쏜다  웃는 얼굴에 뿌려 가짜 눈물이 난다.   남녀 학생이 그늘 밑에 모였다  선생님의 안전교육 평가에   방어 없이 공격만 하는 물총 싸움  전사자, 부상자가 없어 재미가 있다.      -전문- ▶ 해설> 한 문장: '물총 싸움'에서 비유적 묘사가 돋보입니다. 같은 수돗물을 마시기에 남학생은 꿀꿀꿀 돼지처럼, 여학생은 오물오물 누에처럼 비유했습니다. 그..

동시 20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