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작품론 29

정숙자_신화소로서의 모성과 물의 이마고(imago)/ 물을 만드는 여자 : 문정희

<시사사 리바이벌 - 다시 읽어보는 오늘의 명시집!!!> 물을 만드는 여자 문정희 딸아, 아무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마라 푸른 하늘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

정숙자_ 나의 시론 : 의식하는 손, 지각하는 눈

『시와표현』2016-2월호 / 중견 시인 초대석 _ 나의 시론 의식하는 손 지각하는 눈 정숙자 시와 시론과 삶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는가. 시와 시론과 삶을 따로 나누어 호흡할 수 있는가. 혹은 시와 시론과 삶 가운데 어느 한쪽에서든 중량을 덜어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가끔 자신에게 던지곤 한다. 왜냐하면 시와 시론과 삶이라는 구획에서 어렵지 않은 파트란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시와 시론과 삶’이라는 경계 자체가 아예 틀린 어법인지도 모른다. 시와 시론과 삶은 한 톨의 씨앗에서 폭발한 줄기들이 아닌가. 그 줄기들의 일사불란한 협력 아래 태양도 땅 속 깊이 손을 넣어볼 수 있지 않은가. 의식에서 지각으로, 지각에서 지향으로의 벡터가 펼쳐지려면 온몸의 집중 / 열중이 필요조건이다. 우리가 제대..

정숙자_시집 속의 시 읽기/ 물결 표시 : 한정원

물결 표시 _ 한정원 짧은 물결 표시 〜 안에서 그가 긴 잠을 자고 있다 휘자(諱字) 옆에 새겨진 단단한 숫자 ‘1933년 3월 18일~2010년 4월 22일’ 웃고 명령하고 밥을 먹던 거대한 육체가 물결 표시 위에서 잠깐 출렁거린다 햇빛이고 그늘이고 모래 산이던, 흥남부두에서 눈발이었던, 국제시장에서 바다였던 그가 잠시 이곳을 다녀갔다고 뚜렷한 행간을 맞춰놓았다 언제부터 〜 언제까지 푸르름이었다고 응축된 시간의 갈매기 날개가 꿈틀 비석 위에서 파도를 타고 있다 효모처럼 발효되는 물결 표시 안의 소년 한정원『마마 아프리카』 한 사람의 가장 믿을만한 인자를 집약한 책은, 곧 인격이다. 책이야말로 사람이 만들고 사람에게 베풀며 사람에게 남길 수 있는 항구불변의 혈액이기에 저자는 저자대로 독자는 독자대로 책의..

정숙자_시사사 리바이벌/ 침묵피정 1 : 신달자

침묵피정 1 신달자 영하 20도 오대산 입구에서 월정사까지는 소리가 없다 바람은 아예 성대를 잘랐다 계곡 옆 억새들 꼿꼿이 선 채 단호히 얼어 무겁다 들수록 좁아지는 길도 더 단단히 고체가 되어 입 다물다 천 년 넘은 수도원 같다 나는 오대산 국립공원 팻말 앞에 말과 소리를 벗어놓고 걸었다 한 걸음에 벗고 두 걸음에 다시 벗었을 때 드디어 자신보다 큰 결의 하나 시선 주는 쪽으로 스며 섞인다 무슨 저리도 지독한 맹세를 하는지 산도 물도 계곡도 절간도 꽝꽝 열 손가락 깍지를 끼고 있다 나도 이젠 저런 섬뜩한 고립에 손 얹을 때가 되었다 날 저물고 오대산의 고요가 섬광처럼 번뜩이며 깊어지고 깊을수록 스르르 안이 넓다 경배 드리고 싶다 -전문- 침묵은 말 이전의 언어이며 언어 이후의 말이다. 또한 침묵은 시간..

정숙자_어떤 속도에도 굴하지 않는 속도의 시인, 윤강로

어떤 속도에도 굴하지 않는 속도의 시인 정숙자 문학이 아니어도 문학만큼의 충만을 어디선가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문학을 접었을지 모른다. 문학이 아니어도 문학만큼 이성을 깎고 가슴을 들끓게 하며 뼈를 담금질할 열락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미 잉크병의 뚜껑을 닫고 펜을 잊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세계는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학이 주는 고뇌와 갈등, 인과와 응보가 제아무리 극한 통증으로 작용할지라도 ‘숙명’으로 뭉뚱그리며 인생을 채워나간다. 문학인생! 참으로 경건하고 슬프고 꿋꿋하지 아니한가. 여기 그 ‘문학인생’을 엮어온 한 시인의 시가 있다. 녹슨 철조망 몇 가닥 걸린 말뚝에 고추잠자리 앉았다 고추잠자리 눈 감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