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문혜원_ '그'를 기리는 '나'의 자리(발췌)/ 르베르디를 읽는 르베르디 : 송재학

검지 정숙자 2020. 1. 9. 12:07

 

 

    르베르디를 읽는 르베르디

 

    송재학

 

 

  살인자의 발자국도 죄의식 너머의

  풍경이 될 수 있기에

  누드를 기록하기 시작한

  20세기 이래

  눈동자는 자신의 얼굴 절반부터 제 속에 구겨 넣고

  자화상을 그렸다

  피와 고독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어둠을 사용할 때도

  열 개의 손가락은 결국 자신의 피치카토를 내밀었다

 

  시집에는

  솔렘 수도원 가는 길이 선명하지만

  건반 같은 징검다리를 디뎌야만 했다

  공중을 들어 올리는 바로크형식의 길은

  자신의 그림자가 무수히 매달리는 천 길 벼랑을 깎아놓고

  이정표를 세웠다

  맨발로 불붙은 숯 위를 걸어가는

  지평선을 완성하려고

  또는 자신의 죽음을 메우려고

  비 젖은 육신과 주검이라는 직선이 동시에 도착했다

 

  독백의 발명이야말로 사람의 발명이라는

  르베르디 시집의 여백에

  수척한 별빛이 입을 보태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세계 끝에서*

 

  자신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비가悲歌의 시집 속에서

    -전문,『문학사상』2019년 12월호

 

 

    * 피에르 르베르디의「지평선」, (『르베르디 시선』, 2019)에서 인용  

 

 

   ▶ '그'를 기리는 '나'의 자리/ 고독한 예술가의 자리(발췌)_ 문혜원/ 문학평론가

  르베르디의 존재론적인 시학은 이브 본느프아, 앙드레 뒤 부셰와 같은 후대의 시인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르베르디 자신은 엘뤼아르와 아라공의 명성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송재학은, 중앙 문단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외길을 걸으며 솔렘 수도원 근처에 은둔하기까지의 르베르디의 시를 따라가며, 시 쓰기의 고통과 고독을 함께 나눈다.시 쓰기란 천 길 벼랑 위에 이정표를 세우고 불붙은 숯불 위를 맨발로 걷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주받은 자들만이 걷는 소외된 길이 아니라 본래 시가 자리한 곳이다. 자화상이 자신의 얼굴을 자산 안에 구겨 넣으면서 시작되는 것처럼, 시라는 것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어둠을 낱낱이 튕겨가며 쓰이는 것이다.위의 시에서 "피와 고독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어둠을 사용할 때도/ 열 개의 손가락은 결국 자신의 피치카토를 내밀었다"라는 부분은, 르베르디의 시 "붉은 내 손은 하나의 낱말/ 목멘 흐느낌이 떨리는 짧은 호소/ 압지 위에 흘린 피/ 잉크는 거저다"(「지평선」) 에 드러나는 이미지와 겹쳐진다. 말하자면 위의 시는 르베르디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그와 함께 써가는 시인 것이다. 르베르디가 시에서 자신의 그림자 안으로 회귀했듯이, 시는 자신의 내면의 어둠으로 내려가 그것과 더불어 하며 읊조리는 독백과 같은 것이다. 송재학이 르베르디를 빌려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p.21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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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2020-1월호 <이 달의 문제작/ 시 부문> 에서

  * 문혜원文惠園/ 1965년 제주 출생, 1989년『문학사상』으로 평론 부문 등단, 연구서『한국 현대시와 모더니즘』『존재와 현상』등, 평론집『흔들리는 말, 떠오르는 몸』『비평, 문화의 스펙트럼』등, 대담집『문학의 영감이 흐르는 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