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레레 노비스*
정채원
부상당한 광대는
무대에서 내려와 절룩절룩
밤의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짝짝이 발자국에 고이는 짝짝이 달빛
서커스의 소녀는
머리 위로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기둥에 묶인 마녀처럼
환호 속에 매일매일 처형당하고
창녀들은 불 밝은 창가에 웅기중기 모여 있다
집은 저 좁은 골목 어느 쪽으로 꺾어지나
해골의 눈구멍처럼 캄캄한
빈집 창문들
식어버린 용암빛 하늘과
분출하는 마그마처럼 붉은 땅 사이
얼굴이 지워진 남자들은
어디론가 바쁜 척 돌아가고
스테인드글라스 예수는
아침마다 조각조각
찬란하게 부서진다
무릎 꿇은 자들 머리 위로
살아서 미처 불태우지 못한
수백 점의 '미완성'
화가의 아틀리에에 남아 있다
끔찍한 것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것**
고통은 완성되지 않는다
-전문-
* Miserere Nobis,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조르주 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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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2020-1월호 <이달의 시인> 에서
* 정채원鄭彩園/ 1951년 서울 출생,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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