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미제레레 노비스* /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20. 1. 7. 23:49

 

 

    미제레레 노비스*

 

    정채원

 

 

  부상당한 광대는

  무대에서 내려와 절룩절룩

  밤의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짝짝이 발자국에 고이는 짝짝이 달빛

 

  서커스의 소녀는

  머리 위로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기둥에 묶인 마녀처럼

  환호 속에 매일매일 처형당하고

 

  창녀들은 불 밝은 창가에 웅기중기 모여 있다

  집은 저 좁은 골목 어느 쪽으로 꺾어지나

  해골의 눈구멍처럼 캄캄한

  빈집 창문들

 

  식어버린 용암빛 하늘과

  분출하는 마그마처럼 붉은 땅 사이

  얼굴이 지워진 남자들은

  어디론가 바쁜 척 돌아가고

 

  스테인드글라스 예수는

  아침마다 조각조각

  찬란하게 부서진다

  무릎 꿇은 자들 머리 위로

 

  살아서 미처 불태우지 못한

  수백 점의 '미완성'

  화가의 아틀리에에 남아 있다

  끔찍한 것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것**

 

 

  고통은 완성되지 않는다

    -전문-

 

 

    * Miserere Nobis,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조르주 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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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2020-1월호 <이달의 시인> 에서

   * 정채원鄭彩園/ 1951년 서울 출생,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