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 한선자

검지 정숙자 2019. 11. 24. 23:18

 

 

    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

 

    한선자

 

 

  미동도 없이 화면을 본다

  동생을 살려달라는 기도가 푸르다

  여자는 추모편지를 읽다 말고 단상을 내리친다

 

  순간, 오래전에 죽은 새 한 마리를 만진다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날개가 돋기 시작한 새를 놓쳐버린 어미는 죽은 새를 불 속에 던져 넣고 먼 곳을 헤맸다

  어미 새도 타버릴까 무서웠다

 

  그 후로 오랫동안 울음소리마다 나뭇잎들이 떨어졌다

  도시에 와서도 가끔 새가 울었지만 누구도 죽은 새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어둡고 축축한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단단하게 죽은 새 한 마리를 오래도록 쓰다듬는다

  무등을 타고 놀던 어린 새가 화면 가득 날아다닌다

 

  푸른 기도 속으로 떠난 새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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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한선자/ 2003년 시집『내 작은 섬까지 그가 왔다』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울어라 실컷 울어라』『불발된 연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