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화혼
이희섭
숨 쉬는 일이 가장 힘들어 보이던 새벽녘
폐암 진단 삼사일 만에
숨마저 봉해버렸다
오래된 독이 되어
검은 물을 퍼올리는 아버지
누군가 결혼식장으로 갈 봉투를
잘못 내고 간 것일까
부의 봉투 틈에서 홀로 빛나는
'축화혼'
그러고 보면 죽음이라는 것은
또 다른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일이니
두 번째 화혼(華婚)이다
먼저 가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셨을까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떠나야 하는 곤혹과
보내야 하는 지난함을 생각한다
검은 물이 빠져나간 달밤
희게 빛나는 문장들이
봉투 속으로 스며든다
* 『시와사람』2011-가을호/ 신작특집, 에서
* 이희섭/ 김포 출생, 2006년『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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