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씨 별세하다
이승하
신문 부고란에서 동명이인의 부고를 본 날
나와 똑같은 이름으로 살다 간
이승하 씨 장례식장에 가야만 할 것 같다
이승하니까 이승하 씨에게 조문해야 할 것 같다
이승하! 승하야! 승하 씨! 이군! 이 서방! 이 일병!
존경과 멸시 사이에서
그리움과 외로움 사이에서
이름은 불리어지고 이름은 떠돌고
이름 하나 남기고 나도 사망할 것이다
별명은 무엇이었을까
뒷짐 지고 걷는다고 내 별명은 ‘영감’이었는데
그대 한자로는 어떻게 썼을까
나는 오를 昇에 여름 夏
임금이 죽은 것을 昇遐라고 했으니
우리 이름에는 애당초 죽음이 깃들어 있었던 것
잘 죽었소? 많이 아프지 않고?
내 죽어 신문 한 귀퉁이 부고란에
이름 석 자 적히는 날
또 다른 이승하 씨가 자기 이름 본다면
죽음을 길들일까 혀를 차며 동정할까
신문지 접어들고 잠시 묵념한다
*『좋은시 2011』에서/ 2011.2.25 (주)도서출판<삶과꿈> 펴냄
* 이승하/ 경북 의성 출생, 1984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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