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승하 씨 별세하다/ 이승하

검지 정숙자 2011. 3. 24. 02:36

  

    이승하 씨 별세하다


      이승하



  신문 부고란에서 동명이인의 부고를 본 날

  나와 똑같은 이름으로 살다 간

  이승하 씨 장례식장에 가야만 할 것 같다

  이승하니까 이승하 씨에게 조문해야 할 것 같다


  이승하! 승하야! 승하 씨! 이군! 이 서방! 이 일병!

  존경과 멸시 사이에서

  그리움과 외로움 사이에서

  이름은 불리어지고 이름은 떠돌고

  이름 하나 남기고 나도 사망할 것이다


  별명은 무엇이었을까

  뒷짐 지고 걷는다고 내 별명은 ‘영감’이었는데

  그대 한자로는 어떻게 썼을까

  나는 오를 昇에 여름 夏

  임금이 죽은 것을 昇遐라고 했으니

  우리 이름에는 애당초 죽음이 깃들어 있었던 것


  잘 죽었소? 많이 아프지 않고?

  내 죽어 신문 한 귀퉁이 부고란에

  이름 석 자 적히는 날

  또 다른 이승하 씨가 자기 이름 본다면

  죽음을 길들일까 혀를 차며 동정할까


  신문지 접어들고 잠시 묵념한다



  *『좋은시 2011』에서/ 2011.2.25 (주)도서출판<삶과꿈> 펴냄

  * 이승하/ 경북 의성 출생, 1984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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