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일방통행/ 이경

검지 정숙자 2014. 3. 15. 13:42

 

 

     일방통행

 

      이경

 

 

  이 도시에 이삿짐을 부린 첫날 벽에 구불구불한 금이

생겼다

  자세히 보니 금이 아니라 줄이다

  줄을 물고 일사분란하게 이동하는 개미떼다

  거실 벽을 가로질러 주방 벽을 건너 높고 가파른 벼랑 위

  길이 끝나는 곳에 꿀 병이 있다 꿀 병 속으로 꿀 병 속으

  꿀을 먹으러 가는 줄은 있는데

  먹고 돌아오는 줄이 없다

  바쁜 발놀림으로 보아 꿀로 된 못이 있다는 소문이

  개미 소굴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진 모양

  누군가 돌아가 상황을 알리기 전에는 멈출 수 없는 죽음의

일방통행

  그러나 누가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한 번 꿀맛을 본 개미는 입이 붙어 손발이 붙어버려

  서서히 가운데로 밀려들어가 꿀의 표면이 된다

  그러나 누가 돌아설 것인가

  개미 한 마리가 돌아서서 개미의 줄을 둘려세울 것인가 어

떻게

  저 달고 끈적끈적한 혀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끝이 안 보이는 개미의 줄을 먹어치우는 중이다

 

 

  *『시향』2014-봄호 <지난 계절의 시 50선>에서, 게재지 『포엠포엠』

  * 이경/ 등단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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