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의 귀 너머
김승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가다가 본다
하늘을 깁고 지나가는 비행운
바늘의 귀가 하늘 한가운데 열려 있다
낙타가 그 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고 그랬나
실은 그 구멍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 수많은 낙타의 행렬들이 보이기도 하는 것
확대경을 끼우고 수년에 걸쳐
낙타들을 거느리게 되는 예술가처럼
나는 운전석에 앉아 가느다랗게
하늘에 떠 있는 바늘의 귀를 응시하는 중이다
어디로들 가시는가 혼잣말을 하는 때
발밑이 닿지 않을 때 이런 식으로 이륙할 것만 같은 시절에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속이 미식거릴 때
바늘 끝이 찌른 곳 동그랗고 붉은
마음을 휴지로 닦아내자마자 다시 동그랗게 붉어지는
마음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앞 유리창에 눈을 두었을 뿐인데 어떤 사실이 많이 지나가서
나는 야구공의 실밥 같은 오늘의 단어 같은 질감을 만지게 되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놓치기 직전 야구공을 감싸 쥐듯
내 손은 어떤 희망을 우겨넣고 꿰맬 수 있는지
몸속에서 생겨나는 둥근 것들을 어떻게 감싸 안고 있었는지
무엇을 꿰맨다는 것은 꿰뚫는다는 사실 뒤에 오는 것인데
생각에 잠긴 어제의 나처럼 오늘의 바늘은 손에서 벌써
떠나 반짝이고 있는가
나는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지나가고 없다 비행기를 따라가다가
비행운은 아무 것도 뚫을 수 없을 것처럼 넓어져서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어느 날 나의 기분처럼
어느 더운 나라로 잠시 날아갔다가 온 한날한시의 희망으로 가득찬 나
의 풍경처럼
수많은 시간의 바퀴들이 순서대로 지나간 뒤에
얇게 퍼지는 나를 노을과 함께 데려다 놓은 곳에서 갈수록 멀리
어떤 사실과 함께 묶여 날아가고 있는 저 긴 비행운
* 『발견』2014-봄호/ 신작시
* 김승/ 1981년 서울 출생, 2007년『서정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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