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스크랩] 서더리탕/정채원

검지 정숙자 2014. 3. 19. 00:18

 

서더리탕


정채원

 

 

 

살 발라낸

앙상한 몸통과 대가리
시뻘건 국물 속에서
곤이와 애간장까지 끓고 있다

 

광어 대가리일까, 도미 꼬리일까
저 시커먼 덩어리는
저 뼈만 남은 가슴은
놀래미? 우럭? 아니면 당신?

 

악마 머리에 붙어다니던 천사 아가미이거나
초현실주의 몸통에서 잘라낸 등지느러미?
신촌 들뢰즈와 불광동 카프카는 일찌기 뼈만 남아 아무 말이 없는데

 

아주 사적인 생각에 빠져
뼈다귀들이 설설 끓고 있다
거품이 악성 댓글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담 든 몸에 파스 붙이듯
이름을 계속 갈아 붙이고 살던 남자가
아파트 11층에서 떨어졌다, 단풍 붉게 물든 늦가을
회 뜨고 남은 살점 군데군데 붙어 있는 뼈다귀가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어디론가 헤엄쳐 가고 있다

 

짠물에 새기던 사소한 고독의 가시무늬
익명탕이 홀로 졸아들고 있다

 

 

 

<시안> 2009년 겨울호

 

 

출처 : 일교차로 만든 집
글쓴이 : 저녁무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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