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開眼手術執刀錄-執刀25/ 함기석

검지 정숙자 2014. 3. 14. 16:03

 

 

    開眼手術執刀錄

     -執刀25

 

      함기석

 

 

  펜을 쥔 오른손이 절단되어 백지에 떨어진다 창백한 공항이다

글자들은 모두 여객기가 되어 이륙하고 없다 텅 빈 활주로에 누워

손은 꿈틀거린다 뒤집어진 거미처럼 버둥거린다 손가락을 움직여

거품 피를 뿜는다 거미줄 집을 지어 떠나간 왼손을 찾는다 붓을

쥔 왼손을 찾는다 눈이 내린다 엉킨 거미줄 사이로 눈이 내린다

눈은 눈의 항거다 하얀 폭동이다 수천 마리 물고기고 흰 건반이다

아니 눈을 없애는 탄환이다 지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말줄임

표다 백색의 마침표다 눈이 언다 바닥이 언다 왼손은 끝끝내 보이

지 않는다 그래도 펜을 놓지 않고 손은 계속 손을 찾는다 황량한

공항이다 펜을 쥔 손이 하나 체온 잃은 백지 속에서 얼어가는 겨

울밤이다

 

 

 * 『포엠포엠』2014-봄호

 *  함기석/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오렌지 기하학』,

   『뽈랑 공원』, 『착란의 돌』등. 동시집 『숫자벌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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