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변
이서화
오래 쓰지 않았는데
말투는 여전히 삐걱거린다
꼭 맞은 대답들은 어디에 있나
늦가을 묻는 날씨와
재치 있는 나뭇잎들의 대답
마중 나가거나 지나친 일들을 불러들여
설명할 테이블이나 의자를
마련해야지 하면서
여전히 엉거주춤 서 있다
호박잎은 여름내 질문만 퍼붓다
군데군데 크고 잘 익은 대답을 들킨다
질문엔 다 때가 있고 그때를
지난 곳곳엔 호박 같은
대답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눌변은 늘 애호박을 놓치고 만다
그런 눌변은 앞보다는 옆을 선호한다
옆을 묻고 옆을 대답한다
식물들은 눌변이 없다
대답 없인 처음부터 대답 없는 질문은
피워내지 않는다
말이 다르고 대답 종류가 다른 건
동물들뿐이다
-전문(p. 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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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여시 3집 『꽃이라는 이름을 벗고』에서/ 2023. 11. 11. <채문사> 펴냄
* 이서화/ 강원 영월 출생, 2008년『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굴절을 읽다』『낮달이 허락도 없이』『날씨 하나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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