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곡선 정숙자 부질없음에 감염되었다 부질없음이 스며들자 모든 일의 발단 전개 결말까지가 덫에 갇히고 말았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던 바이러스 세균이 아무리 창궐할지라도 피할 수 있으려니 설령 괴질에 걸릴지라도 오래잖아 벗어날 수 있으려니 부질없음≒쓸모없음≒덧없음 이 ‘없음 증후군’은 정신의 문제니까 스스로의 의지로 치유 가능한 질환이니까 아무런들 쓰러지랴 믿어왔다 (아니, ‘부질없음’에 관한 한 근처에 얼씬거려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늦었다 벌써 폐부 깊숙이 병원체가 점령/주둔하고 있다 떵떵거리다 탕탕 을러메다 회유한다 “부질없어요. 쓸모없다니까요. 덧없는 것을요” 이 병마에 걸리기 직전까지가 푸른 삶이다 이제 이 페스트 수용해야 할까? 오히려 남은 햇빛 다 버리더라도 다시 역병에 걸릴지라도 새로운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