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곡선
정숙자
부질없음에 감염되었다
부질없음이 스며들자
모든 일의 발단 전개 결말까지가 덫에 갇히고 말았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던 바이러스
세균이 아무리 창궐할지라도
피할 수 있으려니
설령 괴질에 걸릴지라도
오래잖아 벗어날 수 있으려니
부질없음≒쓸모없음≒덧없음
이 ‘없음 증후군’은 정신의 문제니까
스스로의 의지로 치유 가능한 질환이니까
아무런들 쓰러지랴
믿어왔다 (아니, ‘부질없음’에 관한 한 근처에 얼씬거려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늦었다 벌써
폐부 깊숙이 병원체가 점령/주둔하고 있다
떵떵거리다 탕탕 을러메다 회유한다
“부질없어요. 쓸모없다니까요. 덧없는 것을요”
이 병마에 걸리기 직전까지가 푸른 삶이다
이제 이 페스트
수용해야 할까? 오히려
남은 햇빛 다 버리더라도 다시 역병에 걸릴지라도
새로운 과거의 정혈을 향해 기어야 할까?
-『시로여는세상』 2014-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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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공검 & 굴원』(3부/ p. 82)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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