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주가公無渡酒歌
- 미망인
정숙자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나. ‘개그 콘서트’를 보는데 눈물이 나. ‘웃찾사’를 보는데도 눈물이 나. 슬프지도 않은데 막 눈물이 나. 주룩주룩 아무 생각도 안하는데 눈물이 나. 이 눈물이 뭔지 나도 몰라. 막을 수도 없고, 막고 싶지도 않고 그냥 눈을 뜨고 있는데 눈물이 나. 이러다 눈알이 쏟아져버리지 않을까 싶게 눈물이 나. 언제 멎을지 알 수도 없고, 언제 또 터질지 알 수도 없는 피눈물이 나. 남들은 복이 터졌다고 위로 전화 걸어오는데, 복 많은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고, 정말 정숙자는 복 터졌다고 말하는데 웃으며 전화를 끊고 나면 눈물이 나. 복이란 터지면 안 되는 거였나 봐. 복이 터지면 눈물도 함께 터지는 거였던가 봐. 누구라도 복이 터지면 눈물 날 거야. 복은 터지지 말고 잘 담겨 있어야 되는 거였어. ‘복 받았어’ 정도의 복이라면 좋았을 걸. 벗이여 부디 복 터지지 마. (좀 부족하더라도···) 터져버린 복은 다시는 꿰맞출 수 없어. ‘개그 콘서트’가 끝났는데도 눈물이 나. 이 눈물은 아무 의미가 없어.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 이 미친 눈물이 잠조차 밀어버리네. 밤이 익었는데도··· 눈물이··· 나.
- 『예술가』 2013-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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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공검 & 굴원』(3부/ p. 83)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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