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선
-미망인
정숙자
벽에 걸린 눈을 봤다. 지나쳤다. 우연히 또 그 눈을 봤다. 순간 멈췄다가 지나쳤다. 다시 그 눈이 눈에 띄었다. 돌아섰다가 돌아서서 그 눈을 눈여겨봤다. 그 눈도 내 눈을 눈여겨봤다. 조금 멈췄다가 지나쳤다. 그 눈이 내 눈을 불렀다. 돌아봤다가 돌아가 또 그 눈을 만났다.
그 눈이 물었다. 너는 뭐하는 눈이냐.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눈이라고 눈으로 말했다. 다만 볼 뿐이냐고 또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보고 싶은 걸 본다고 말했다. 보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안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눈이 그럼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그러면 더 안 보인다고 내가 말했다. 그 눈은 그럼 더 이상 안 묻겠으니 멋대로 하라고 말했다. 나도 그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 눈은 자꾸 질문하면서 내 눈과 말을 자신의 눈 속에 저장하고 있었다. 곧 S극이 열릴 것이다.
-『애지』201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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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공검 & 굴원』(3부/ p. 96)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행복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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