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능소화/ 김명서

검지 정숙자 2012. 7. 20. 14:33

 

 

    능소화

 

    김명서

 

 

  말라버린 우물 속으로

  우주 하나가 들어온 것같이

  당신이 성큼 들어온 순간

  결박된 수문이 한꺼번에 열렸습니다

  폐허 한 채 쓰러지고

  흥건히 젖어오는  애액

  그러나 닿기엔 너무 아득한 이 갈증

  해소할 수 있도록

  제발 나를 불러주세요

  새벽 별보다 더 푸르게 깨어 있다가

  먹보랏빛 울음으로 타버린 가슴에

  당신의 이름을 얹어놓으면

  심연에서 넌출넌출 올라오는 수십 마리의 뱀,

  불의 혓바닥으로 널름거립니다

  멀미가 나고 숨이 막혀

  가슴을 쥐어뜯는 자리마다

  주홍빛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내세에 무간지옥으로 떨어진다 해도

  지금은 나를 깨뜨리고 싶습니다

  견디고 견디다가 키워버린 독으로

  당신의 눈을 멀게 하고 싶습니다

                                               -전문-

 

 

  소쉬르 언어학은 단순한 듯하지만 상상이라는 파장을 일으키는 묘한 힘이 있다. 그가 언어의 속성으로 내세운 파롤과 랑그의 개념으로 따지자면 사물에는 파롤이라는 기호가 붙고 그 속성에 랑그가 있다. 그 랑그라는 세계가 개인의 상상력과 결부되면 무한대로 확장되기도 한다. 능소화라는 기호에서 나는 그 꽃의 모습과 두 개의 랑그를 떠올린다.

  먼저 마이산의 탑사에 있는 능소화이다. 마치 달의 분화구처럼 구멍이 나 있는 수직의 절벽에 붙어 자라는 거대한 능소화 줄기다. 각도를 잘만 잡으면 하트 모양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능소화는 사랑과 인연이 깊은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전설이다. 능소화를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듯 등나무처럼 줄기식물이면서 꽃은 금빛에 가까운 귤색이지만 안쪽은 주황색이다. 봄꽃에 비해 여름꽃은 종류도 적고 그만큼 귀하다. 초록이라는 단색으로 넘실거리는 여름풍경 속에서 시골 담장에 핀 능소화를 처음 보았을 때 그 화려한 느낌이 생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산골에서 화려한 차림의 귀부인을 만났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능소화에 대한 전설이 인상 깊다.

 

  소화라는 여인이 살았다. 임금은 첫눈에 반해 소화에게 빈(嬪)의 자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다시는 소화를 찾지 않았다. 구중궁궐 깊은 처소에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임금의 예리성(曳履聲)만을 기다리던 소화는 결국 잊혀진 여인이 되어 상사병이 깊어 죽고 말았다. 소화가 생전에 부탁한 대로 하녀들은 담장 아래에 매장을 하였다. 자신은 죽으면 담가의 꽃으로 피어나 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겠다고 했다. 그 뒤 그 담 아래에 소화의 애절한 마음처럼 나팔처럼 생긴 주황색 꽃이 피었다. 님의 예리성을 듣기 위해서 귀를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한이 많은 탓인지 님 외에는 만지지 말라는 뜻인지 꽃잎을 따서 놀면 눈이 먼다는 꽃이 능소화이다. 김명서 시인의 <능소화>는 전래되는 이야기의 이미지를 담지한다. 이 시의 화자를 전설 속의 <소화>로 대체해도 무난할 듯싶다.

  서사를 가진 사물을 시로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 부담이 그만큼 크다. 자칫 시적 형상화가 스토리에 가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당신이라는 시적 소재 또한 마찬가지다. 이 소재는 매우 오랜 시원을 갖는다.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에서 시작하여 한용운에서 정점을 이루는 것이 나와 당신이라는 관계설정이다.

  그러나 위험이 있는 만큼 시적 감성이 보편적 공감대에 공명할 수 있다면 그것의 상승효과는 배가된다. 소월의 <진달래꽃>은 두견화라는 강력한 스토리를 개인의 비애로 다듬어 인간의 보편적 감성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야의 <진달래꽃>이란 노래로 장르를 뛰어넘어 진화하는 것도 보편적 심성에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시의 주된 정조는 '간절함'이다. 감동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간절함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시를 읽으면서 시인을 떠올린 것은 김명서 시인이 감내해먀만 했던 치열한 투병의 과정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간절함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당신이 어찌 구중심처에 내팽개치고 찾지 않는 임금뿐이겠는가? 삶의 절벽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얼마나 간절한 애탐이었겠는가!

  '가슴을 쥐어뜯는 자리마다 주홍빛으로 부풀어' 오르는 능소화의 꽃빛이 어쩌면 통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넝쿨식물인 능소화에 피는 꽃을 '심연에서 넌출넌출 올라오는 수십 마리의 뱀'으로 묘사하고 있다. 희망도 기다림도 단절된 상황이라면 그것은 '견디고 견디다가 키워버린 독'일 수밖에 없다.

  이 시가 연시라면 '당신의 눈을 멀게' 할만큼 치명적이다. 독한 사랑이다. 그러나 극한상황 속에서의 시라면 삶에 대한 지독한 간절함이 배인 시이다. 삶도 어차피 사랑 아닌가. 사람과 사랑의 극한 속에서 저 화려한 여름꽃은 오늘도 독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우진용/ 시인)

 

 

  *『시사사』2012. 7-8월호 <테마로 읽는 현대시, 여름꽃>에서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몹쓸 농담/ 김명서  (0) 2012.08.03
고백성사/ 김종철  (0) 2012.07.20
망종/ 채선  (0) 2012.07.18
양주(楊州)에 와서/ 김년균  (0) 2012.07.01
어느 날의 A형 놀이/ 신달자  (0) 201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