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농담
김명서
1.
대물림한 눈물 한 방울까지 짜낸
하망한 동공
찻잔 속에 있을 뿐
어제의 나도 없고
오늘의 나도 없고
내일의 나도 없고
내 몸이 새고 있었다
새는 곳이 가렵다
가려운 곳을 톡톡 친다
각질이 떨어진다
혈관에 포도주를 수혈한다
주신의 축문이 부실한 몸을 끌고 간다
2.
뿌리에 새겨진 나이테를 들추고
어머니를 꺼내고 작은 어머니를 꺼내고 아주 작은 어머니를 꺼내고
아이의 모습을 한
어머니, 어딘가 금이 간 듯 나를 밀쳐내며 "너를 다리 밑에 버려야겠
다."는 말을 한다, 조각조각 흩어진 말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3.
나는 포물선 위에서 공놀이를 한다 공이 구름을 뚫는다 중력을 잃은
구름이 노아를 쏟아낸다
노아는 발등에 쌓인 건조한 말들을 털어내며 율법이 살아 있는 신천
지 마타리로 가자고 떠벌린다
사람들이 보조출연자처럼 흥성거리고
헝겊으로 기운 B-21곤돌라가 여자만 태운다 남자들은 핏대를 세우며
음모론을 갖다 붙이고
4.
아이들은 태어나고, 아이들은 탯줄에서부터 "너를 다리 밑에 버려야겠
다."는 말만 되감는다
5.
늙은 버즘나무는 물관 바깥 허방의 무게만큼 그늘을 지고, 그늘이 자
라는 자리에
두 개의 열어놓은
요양원 25시
"너를 다리 밑에 버려야겠다."는 말, 고집스레 끌어 안는다
*『현대시』2012-8월호 <신작특집>에서
* 김명서/ 전남 담양 출생, 2003년『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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