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망종/ 채선

검지 정숙자 2012. 7. 18. 17:58

 

 

    망종

    -냄새의 끝

 

 

  건기 속 익어가는 것들의 냄새는 눈이 맵다.

 

  빈 대궁에 뜨겁게 스며들어

  저도 모르게 생긴 속에서 배어나오는 뭉클함

  일렁이는 유월의 벌판에서

 

  세상에 대한 물음, 새롭게 정의하고픈 어떤 말들

  마른 태양 아래 세워두고

  사람이 사람에게 심은 붉은 기억을 떠올린다.

 

  내 몸 어느 구석에서 눈 뜬

  무른 씨눈 하나

  한번쯤 살아보는 거라, 별 요량 없이

  잎사귀를 펼치고 너울을 얹는 동안

  하루살이로 나를 들러 간

  찝찔한 것들……

 

  익는다,함이 맺는 일이라면

  씨 한 톨

  천천히 뱉어내는 것이라면

  이 더운 냄새는 무엇의 날갯짓일까.

 

  빈 대궁 속 같은 비릿함에 대하여

  여태 찾지 못한 말, 일몰의 기억들

  초승달 미늘에 걸어두고

  너울대는 보릿내 깔고 누운 벌판의 밤.

 

  무른 잠 속에서 열리는 모르는 집,

  낯익은 마당으로

  청개구리 울음이 비벼대는 냄새의 돌기들

  여러 생을 적시고 흘러든다.

 

  

  * 『열린시학』2012-여름호/ <이계절의 시>에서

  *  채선/ 서울 출생, 2003년『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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