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천국에서 온다
김광섭
패배여
너를 쓰러트린 선혈은
목이 잘린 꽃에서 피었다
죽어서 열망을 충족하는데
패배와 겨루어 이기면 승자인가
목덜미 시뻘겋게 꺾어 무덤에 심어졌다
천국에 왔는데 지상의 못을 들여다보면
끝없이 참수당하는 망령들이 눈을 뜨고 있다
칼 한 자루로 허공에 꽂혀 피를 삼키고 있다
죽은 자와
악수할 자 누구인가
적장이 목을 내려치는 순간에도
뜨겁게 뛰어야 하는 것이 패장의 심장이었나
아군의 목숨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칼을 쥐어야 했던 피의 난동에서
깃발은 함성에도 펄럭이지 않았다
꽃잎이 쏟아진다
텅 빈 목에서
빛이 나를 보고 있다
꺼져 가는 나를
승장의 칼에 꽂힌
두 눈을 뽑아다오
슬픔은
천국에서 온다
살아 있는 패배는
자유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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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9-겨울호 <신작> 에서
* 김광섭/ 2013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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