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일기 1
노춘기
날카로운 빗줄기가 어두운 묘지에
내리꽂혔다
송곳처럼 몸을 일으키는 냉기
잠이 오지 않아요, 어머니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나요
수십 마리의 표정 없는 양들이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그건 네 영혼이 아픈 거란다
그 비명 소리가 너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 줄 거야
먼 길을 달려온 마차와 함께
가득 차오르는 거친 숨소리
숲의 적막을 환하게 덥히는 화톳불
맥없는 연기가 아직 어두운 바람에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다
불꽃, 온몸을 뒤흔드는 불꽃 속에서
타닥타닥 말발굽 소리가 선연하다
불길을 마라보는 너의 눈에 생기가 욱씬하다
다시 밤이 온다 침엽수림 사이로
밤새들이 오가는 좁은 길이 열린다
너는 즐거운 집으로 돌아왔구나
*『계간 파란』 2019-가을호 <poet/ 신작> 에서
* 노춘기/ 2003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오늘부터의 숲』『나는 레몬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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