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지대
최승호
무뇌아를 낳고 보니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자궁 속에 고무인형 키워온 듯
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릿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정수리 털들을 하루종일 뽑아댄다
-전문, 『세속도시의 즐거움』(1990. 세계사)
▶ 현대시의 현상과 존재론적 해석/ 하이데거의 관점에서(발췌)_ 이구한/ 시인, 문학평론가
자연 생태계는 산업화로 인해 훼손되고 파괴되었다. 공장은 자본주의의 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현대인은 폐수와 매연과 산업폐기물로 인해 환경이 파괴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시는 현대 도시 문명을 뒤덮고 있는 세속도시 삶의 병적 현상을 관찰자의 사실적인 눈으로 조명하고 있다. (……) '처해 있음'을 반성하지 않는 한 산모의 '거기 있음'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죽음이다. 이는 산모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죽음의 재앙에 대한 경고이며, 세계 멸망에 대해 강력한 고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수리 털을 하루종일 뽑아내는 자학적인 증상을 나타낸 산모는 자기 파괴적인 비관주의로 전락한다. 문제는 인간의 외적인 상황에 대한 황폐성 뿐 아니라 내면적인 정서의 불안과 파괴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물질을 우선시로 하는 세속 도시의 황폐성을 드러낸 이 작품을 통해 현존재의 '거기 있음'과 존재의 물음을 물어가는 과정을 확인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 산업사회의 사람들에게는 존재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풀어가야 할 책무가 주어지게 된다.(p. 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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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 2020-상반기호 <문학 평론> 에서
* 이구한(본명: 이광소)/ 1965년 제4회 대한민국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 당선 & 2017년 『미당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약속의 땅, 서울』『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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