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아기 앞에서/ 김기택

검지 정숙자 2020. 1. 29. 01:10


<초대시>


    아기 앞에서


     김기택



  아직 제가 태어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눈으로

  유모차에 앉아 있던 아기가


  내 눈과 마주친다, 순간

  아기가 다칠 것 같다

  내 눈빛에서 튀어나가는 이빨과 발톱을

  어떻게 눈알에 붙들어 매야 하나 난감하다


  자신을 방어할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아기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방어하고 있던 내 두려움도

  아기 앞에서 다 들켜버린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고 관절이 연약해지며

  내 안에서 조용히 무릎 꿇는 것이 있다

  혀에 가득한 말들은 발음을 잃고

  표정은 얼굴로 가서 입 벌리고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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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19-겨울호 <초대시(신작시)> 에서

  *  김기택/ 경기 안양 출생, 1989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태아의 잠』『갈라진다 갈라진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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