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핀/ 조미희

검지 정숙자 2020. 1. 26. 22:27



   


    조미희



  거리에 서면 화약 냄새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 폭탄이

  사람들 심장 밑에 숨겨 있다

  건드리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핀을 뽑지 않지만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핀을 뽑는 사람도 있다

  저기 걸어오는 한 사람,

  전신이 폭탄이다

  곧 터지고야 말

  어디서 수차례 얻어터진 얼굴 위로 핏방울이 번진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기를 꺼린다


  -아무도 쳐다보지 마

  -누군가 너에게 손을 내밀면 도망가 멀리멀리


  도망간 사람도

  곧 터지고 말 사람도

  각자의 손엔 어디서 뽑혔는지 모르는 핀이 들려 있다


  꽃이 피고

  낭만적으로 비가 오고

  낙엽이 져도

  우리는 쓸쓸히

  아무 손도 잡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손에 쥐어진 핀을

  섞거나 교환한다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뽀얗게 뽀얗게

  발자국은 드문드문 혼자서 걸어간다

  사방을 경계하며 저녁 눈 맞으러 가야겠다

  밖은 계속 전쟁 중이지만

  나는 너무 숨어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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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19-겨울호 <겨울의 시와 시인의 노트/ 신작시> 에서

  * 조미희/ 2015년『시인수첩』으로 등단, 시집『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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