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
조미희
거리에 서면 화약 냄새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 폭탄이
사람들 심장 밑에 숨겨 있다
건드리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핀을 뽑지 않지만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핀을 뽑는 사람도 있다
저기 걸어오는 한 사람,
전신이 폭탄이다
곧 터지고야 말
어디서 수차례 얻어터진 얼굴 위로 핏방울이 번진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기를 꺼린다
-아무도 쳐다보지 마
-누군가 너에게 손을 내밀면 도망가 멀리멀리
도망간 사람도
곧 터지고 말 사람도
각자의 손엔 어디서 뽑혔는지 모르는 핀이 들려 있다
꽃이 피고
낭만적으로 비가 오고
낙엽이 져도
우리는 쓸쓸히
아무 손도 잡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손에 쥐어진 핀을
섞거나 교환한다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뽀얗게 뽀얗게
발자국은 드문드문 혼자서 걸어간다
사방을 경계하며 저녁 눈 맞으러 가야겠다
밖은 계속 전쟁 중이지만
나는 너무 숨어 지냈다
*『시현실』 2019-겨울호 <겨울의 시와 시인의 노트/ 신작시> 에서
* 조미희/ 2015년『시인수첩』으로 등단, 시집『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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