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미싱 링크 외 1편/ 임경묵

검지 정숙자 2020. 1. 26. 22:16



    미싱 링크 외 1편


    임경묵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 눈사람이 쓰러져 있다

  얼굴엔 검정 페인트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고

  두 눈엔 파란 츄파춥스가 꽂혀 있다

  행운목이 박힌 왼쪽 어깨는

  괴사가 진행 중이다


  건너편 재개발 아파트 놀이터에는

  니그로인처럼 검은 얼굴과 스칸디나비아인처럼 파란 눈을 가진 눈사람이 쓰러져 있다

  몸싸움 흔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


  폭설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이들이

  눈덩이를 굴리고 있다

  작은 눈사람 하나씩을 들고 낑낑대며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하나, 둘, 셋,

  아래로 힘껏 던진다

  눈사람이 순식간에 분리된다

  때리고

  부수고

  뭉개고

  눈사람은 다시 최초의 눈꽃이 된다


  부서진 눈사람 속에서

  얼어붙은 심장 한 줌을 꺼내

  붉은 페인트 스프레이를 뿌리고

  후- 하고

  다시 생기生氣를 불어넣는 아이들……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고

  혓바닥이 창백해지도록 파란 츄파춥스를 빨며

  눈덩이를 굴린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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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이



  겨울 방학을 얼마 앞두고

  우리 집 바둑이가

  자기를 쏙 빼닮은 새끼를 딱 한 마리 낳았는데

  사산死産이었다


  어머니가 해준 미역국은 쳐다보지도 않고

  죽은 새끼를

  가슴에 꼬옥 품고 연신 핥으며

  끙끙거리던 바둑이……

  며칠이 지나도 컴컴한 마루 밑에서 나오질 않았다


  학교에 가서도 바둑이 생각에

  도무지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청소 당번도 팽개치고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와

  미역국에 감자 몇 개 더 썰어 넣고

  멸치 한 주먹 넣어

  연탄불에 팔팔 끓여 양푼에 담아 식혀 놓고

  마루 밑 바둑이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사랑방 부엌에도, 헛간에도, 어스름이 깔린 골목 끝에도

  죽은 새끼를 묻은 냇둑에도

  보이질 않았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는데

  내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철제 책상이

  툇마루 지나

  건넛방 문지방을 마악 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개장수에게 바둑이를 넘기고

  책상을 사 온 거다


  너도 오늘부터 책상에서 공부해라


  나는 도저히……

  그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자신이 없었다

  바둑이를 팔아

  공부할 수는 없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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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19-겨울호 <겨울의 시와 시인의 노트/ 신작시> 에서

  *  임경묵/ 2008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체 게바라 치킨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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