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아기 앞에서
김기택
아직 제가 태어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눈으로
유모차에 앉아 있던 아기가
내 눈과 마주친다, 순간
아기가 다칠 것 같다
내 눈빛에서 튀어나가는 이빨과 발톱을
어떻게 눈알에 붙들어 매야 하나 난감하다
자신을 방어할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아기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방어하고 있던 내 두려움도
아기 앞에서 다 들켜버린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고 관절이 연약해지며
내 안에서 조용히 무릎 꿇는 것이 있다
혀에 가득한 말들은 발음을 잃고
표정은 얼굴로 가서 입 벌리고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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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아돌하』 2019-겨울호 <초대시(신작시)> 에서
* 김기택/ 경기 안양 출생, 1989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태아의 잠』『갈라진다 갈라진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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