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외 1편
박송이
한 시인이 죽었다
시인에게는 이름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섣불리 부르지는 못했다
다만 그 이름은 기사가 되었고 이슈가 되었다
하루 동안 검색 순위에 올랐다가 순위에서 사라졌다
한 시인이 죽었다
시인에게는 시집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시를 낭독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집은 판매 순위에 다시 올랐고 팔려 나갔다
들판을 달려 사람들 집으로 시집이 배달되었고
사람들은 가장 먼저 시인의 말을 읽었다
오전에서 오후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집에선가 아이를 마구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을 닫으면 해가 떨어졌고 까마귀가 날아 올랐다
날아오른 까마귀는 금세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고
사라진 까마귀는 또 어느샌가 사람들
곁에서 주억거리고 있었다
한 시인이 죽었다
시인에게서도 시집 그 어디에서도
손은 비명의 언어들만 받아 적고 있을 뿐
위로받을 수 있는 손의 언어와
위로할 수 있는 손의 언어는
너무 짧거나 애매하거나
아예 없었다
바람에 기대어 우는 바람이 차가웠다
사람들이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따금 비명이 들려왔다
입이 없는 하루살이들처럼 시들었다가
아침이 오면 까무러치며 애통할
일이 발견될 것이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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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나무 아래서 책을 펼쳐 읽다가 간혹 낙엽 한 장이 끼어 있는 페이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뭇잎을 꽂아 넣었던, 기억도 안 나는 그날의 심정과 잎사귀를 매만지는 지금의 심정이 약속도 안 하고 만나는 날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끼고 살았던 허수경의 시집을 도로 꺼내 읽습니다 어느 구절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고 또 어느 구절에는 별 표시가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한 자루 연필을 쥔 채 살아가는 필생일까 혼자 가는 먼 집을 서걱서걱 필사해 봅니다 그저 맨발이 되어 무거운 배낭을 꾸리지도 않고 떠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연한 날 약속도 안 하고 만날 테지만 하얀 새, 도저히 베낄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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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박송이/ 2011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조용한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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