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사슴이라는 말을 슬프다/ 정윤천

검지 정숙자 2020. 1. 11. 21:14

 

 

    사슴이라는 말은 슬프다

 

    정윤천

 

 

  귀에서 실이 나왔다

  어머니가 발등을 밟아주면 사슴은

  잔발로 숲을 달렸다

  사슴의 다리 밑에서 나뭇잎 같은 헝겊을

  만지막거리며 지내기도 하였다

  누군가 사슴의 모가지만 잘라서 가져가 버렸다*

  천강千江에 내린 달빛이 남김없이 스러졌던

  아침까지

  사슴의 울음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하고 무서운 달이 방문 앞에

  한동안 넘어져 있고는 하였다

  사슴을 잃은 어머니의 눈빛이

  늦게까지 슬픈 짐승처럼 남아 있었다.

    -전문-

 

    * 당신의 재봉틀에서 누군가 머리만 떼어가 버린 적이 있었다

 

    ---------------

   *『현대시』2019-12월호 <신작특집>에서

   * 정윤천/ 1990년《무등일보》신춘문예 당선, 1991년『실천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