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화안시(和顔施)/ 우정연

검지 정숙자 2019. 12. 12. 00:16

 

 

    화안시和顔施*

 

    우정연

 

 

  인력시장 새벽 네 시는

  배고픈 사람들의 마지막 일터다

  반쯤 잠에서 깨어

  새벽공기를 가르며 하나둘 모이는

  밥 냄새를 찾는 발걸음들

 

  노동을 팔기 위해 줄을 선

  노란 염색머리의 젊은이

  인력 사무실의 자판기에서

  삼백 원짜리 일회용 커피를 꺼낸다

  내일이면 쨍하고 해가 뜨리라

  순서를 기다리면서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마신 후 컵을 구겨서 휙 던진다

  그 순간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던 문신을 한 중년 남자의

  가슴에 탁,

  용무늬가 일렁거린다

  아차!!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젊은이를 향해

  힘내 이 사람아 하면서

  구김 없이 웃어준다

 

  지갑 속에 접어 두었던

  아버지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전문-

 

 

   * 불교의 무재칠시無財七施의 하나로 환하게 웃는 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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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19-12호 <시>에서

   * 우정연/ 2013년『불교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