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효은_ "진짜를 본 것처럼" 웃기와 단 하나의...(발췌)/ 겨울잠 : 여태천

검지 정숙자 2019. 12. 11. 23:41

 

 

    겨울잠

 

    여태천

 

 

  발이 꽁꽁 얼어

  걸어 다닐 수가 없었지

 

  두 손을 비비며

  얼른 키가 컸으면

  마음이 생길 때마다

  무화과를 따 먹었어야 했는데, 생각을

  생각을 했네

 

  하루에 이백 번씩

  어떤 날에는 삼백 번도 넘게

  줄넘기를 해

  공중에서 오징어처럼 헤엄치다 보면

  발도 손도 노곤해지지

  어른처럼 얼굴이 노래지지

 

  담장을 길게 덮고 있던 들장미

  가시에 찔려도 좋으니

  한번이라도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지

 

  세상엔 언제나 두 개의 겨울이 있고

  잠을 자는 동안

  하얀 겨울을 즐기지

    -전문-

 

 

  ▶ "진짜를 본 것처럼" 웃기와 단 하나의 주문을 쓰기(발췌)_ 김효은

 시인이란 존재는 영원히 피터팬 증후군을 앓는 자가 아닐까. 영원히 겨울잠을 자는 소년/소녀가 아닐까. 그들은 길고도 깊은 단잠을 자고, 꾸고 싶은 꿈을 꾸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여러 개의 목숨으로 여러 개의 배역을 맡아 연기를 펼치는, 마치 '겨울왕국' 속의 여왕이나 왕자처럼, 영원할 것 같은 "잠을 자는 동안", "하얀 겨울을 즐기"는 자들. 그들에게 금기의 조항은 반드시 어겨야 하는 통과제의의 한 형식이 된다. "담장을 길게 덮고 있던 들장미"가 시인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들은 "가시에 찔려도 좋으니", 그 가시덤불들을 "손으로 만져보고" 헤쳐서 기어이 그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탐색하길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탐험자들이다. "줄넘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얼른 키가 컸으면"하는 마음에 "줄넘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얼른 키가 컸으면"하는 마음에 "줄넘기"를 하며 담장 너머를 엿보지만, 당신은 상상만으로 시를 쓰고, 담을 넘어가지는 못한다. 당신은 여전히 미성년에 머물기를 자원하고 잠이 든 채, "하얀 겨울"의 꿈을 꾸고, 그때 저 "무화과를 따 먹었어야 했는데" 하고 단지 "생각을" 생각하고 반복하여 되뇌고 만다. 잠의 끝자락을 붙들고, 당신은 여전히 시인이고  싶다.(p-168) 

 

   ---------------

  *『시에』2019-겨울호 <시에 시인> 에서

  * 여태천/ 경남 하동 출생, 2000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저렇게 오렌지는 익어가고』『국외자들』등

  * 김효은/ 전남 목포 출생, 2004년《광주일보》신춘문예로 시 부문 & 2010년『시에』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비익조의 시학』『아리아드네의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