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안시和顔施*
우정연
인력시장 새벽 네 시는
배고픈 사람들의 마지막 일터다
반쯤 잠에서 깨어
새벽공기를 가르며 하나둘 모이는
밥 냄새를 찾는 발걸음들
노동을 팔기 위해 줄을 선
노란 염색머리의 젊은이
인력 사무실의 자판기에서
삼백 원짜리 일회용 커피를 꺼낸다
내일이면 쨍하고 해가 뜨리라
순서를 기다리면서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마신 후 컵을 구겨서 휙 던진다
그 순간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던 문신을 한 중년 남자의
가슴에 탁,
용무늬가 일렁거린다
아차!!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젊은이를 향해
힘내 이 사람아 하면서
구김 없이 웃어준다
지갑 속에 접어 두었던
아버지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전문-
* 불교의 무재칠시無財七施의 하나로 환하게 웃는 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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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문학』2019-12호 <시>에서
* 우정연/ 2013년『불교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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