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어정잡이/ 김경숙

검지 정숙자 2019. 12. 8. 02:45

 

 

    어정잡이

 

    김경숙

 

 

  슬픔을 두둑하게 소지할 것

  후회를 넉넉하게 준비할 것

 

  어정 쩡, 어느 곳으로나 건들거리기에 좋은 곳, 이쪽저쪽 사방에 시행착오로 너절해진 이력을 늘어놓고 어느 곳으로도 움직이거나 편애하지 않기로 한다 한발 물러서서 동정만 살피다가 그래그래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동조하기로 한다 귀가 솔깃한 주연 배역이 있더라도 조연으로 굳히기로 한다 다만 그럭저럭 궁핍을 예매하고 곤궁은 적당히 견디기로 한다 어느 쪽으로도 생업을 삼지 않기로 한다 중심에서 물러나 주위가 되기로 한다 극렬과 허송으로부터 동시에 외면받기로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자괴감과

  너 그럴 줄 알았다, 비웃음을

  공평하게 예약해놓고

 

  싫어도 웃고

  아파도 웃는

  딱, 그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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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엠포엠』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김경숙/ 2007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빗소리 시청료』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