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둥글어지기까지/ 이학성

검지 정숙자 2019. 12. 4. 12:05

 

    둥글어지기까지

 

    이학성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기,

다들 소중하게 간수했기에 나서길 꺼렸으나

목숨을 내던지며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말했다.

광장이 들끓었다.

성난 군중이 그를 목 졸라 높다란 종루에 매달았다.

비참한 최후는 아주 멀리서도 목격되었다.

소문은 말보다도 더 빠르게 달렸다.

고독하게 빈 서재를 지킨

모래시계가 연신 모래알을 토하고 있었다.

왜 그는 목숨이 아깝지 않았을까. 

한 번 더 결단을 미루려고 하지 않았을까.

과연 순리를 알긴 알았을까.

종교가 과학과 문명을 시종처럼 부리며

짓궂게 구박하고 간섭하던 시기,

그때부터 지구는 비로소 올바르고 아름답게 둥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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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2019-겨울호 <신작소시집>에서

* 이학성/ 1990년『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여우를 살리기 위해』『고요를 잃을 수 없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