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전언/ 전영미

검지 정숙자 2019. 11. 9. 03:03

 

    전언

 

    전영미

 

 

  무언가 잠시 반짝인다

  찢겨진 너의 그림자 안에서

 

  그렇게 쉽게 뭉개지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네 안에서 눈 뜨고 있으니

 

  어둠을 끌어다 덮고 있는 자여

  그대로 잠깐 잠들어도 된다

  너는 땡볕 아래 너무 오래 떨었으니

 

  빙하 속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던 자여

  이제는 흘러가도 좋다

  너는 네 시린 발을 기억하고 있으니

 

  오랫동안 깨진 거울을 들여다보던 자여

  서둘러 새 거울을 사야 한다

  너는 네 얼굴을 안다고 오해하고 있으니

 

  그렇게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또다시 연한 이파리들이 돋아나는 걸 보았으니

 

  내 말을 전혀 듣지 못하는 자여

  결국은 네 스스로 기억해낼 것이다

  너는 이미 내게 이 모든 걸 들려준 적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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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2019-11월호 <신작시 # 1>에서

  * 전영미/ 2015년『시인동네』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