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to 조르바/ 황희순

검지 정숙자 2019. 11. 9. 03:27

 

 

    to 조르바

 

    황희순

 

 

  왜 내 얘기를 하나요, 오르탕스가 내 나이를 엿보잖아요. 이제야 말하지만 나도 나를 숨기고 싶었어요. 주름이 깊어질까 봐 웃음을 삼킨 적도 있어요. 그뿐인가요, 거울 속에서 중늙은 엄마가 자꾸 튀어나와 내가 엄마인지 엄마가 나인지 흘끔흘끔 나를 의심했어요.

 

  생산을 멈춘 욕망이 허벅지께 똬리를 틀고 있어요. 쿡 찌르면 쪼르르 풀릴 거 같은 광기, 남은 이 광기가 자유를 줄까요. 낡아빠진 자유는 왜 주위만 맴돌까요. 허리띠 풀고 춤이라도 춰볼까요. 고요가 야금야금 정열을 죽이고 있어요. 그래도 사람은 사람에게로 흘러가요.

 

  사람의 뒷모습만 사진 찍는 일곱 살짜리 아이가 죽은 할머니 앞에서 저도 늙어간다고 말을 하네요. 죽어도 죽는 게 아니에요. 살아나고 또 살아나는 달, 아니 우울감. 지긋지긋한 자전과 공전은 언제나 멈춰질까요.

 

  당신 뒷모습은 안녕한가요. 여전히 늙어가고 있나요. 당신이 몰아쉰 한숨이 내 가슴에서 터지네요.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싸울 수는 없잖아요. 머리카락을 다 뽑을 수도 없구요. 만물은 하나같이 속임수, 그러니 우리 노련한 짐승이 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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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크『화요문학』2019 / 23호 <초대 신작시>에서

  * 황희순/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미끼』외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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