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찬_ 죽음의 진실, 진실의 몽타주(발췌)/ 탄센의 노래* : 나희덕

검지 정숙자 2019. 11. 5. 02:20

<2019, 제19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작 특집 부문 나희덕/ 자선대표시/ 작품론> 中

 

    탄센의 노래*

 

    나희덕

 

   1.

  이것은 불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등불이 하나씩 켜져요

  불은 번져가고

  몸이 점점 뜨거워져요,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노래를 불러요

  강물도  끓어오르기 시작해요

  뜨거워요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요

  사랑이여, 도와줘요

  비의 노래를 불러줘요 비를 불러줘요

 

   2.

  이것은 비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불꽃이 하나씩 꺼져요

  비가 내리고

  몸이 점점 식어가요

  강물도 가라앉기 시작해요

  기다려요 기다려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이 소나기가 당신을 적실 때까지

  사랑이여, 사라지지 말아요 노래를 불러줘요

 

   3.

  그러나 노래의 휘장은 찢겨지고

  비에 젖은 잿더미만 창백하게 남아있는 밤

  불과 비도

  어떤 노래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밤

    -전문-

 

   * 탄센의 노래: 고대 인도의 가수 탄센과 그의 딸에 관한 설화

 

   * 심사위원: 정현  최승호  권희철

 

   ▶죽음의 진실, 진실의 몽타주/- 나희덕 시집 『파일명 서정시』(발췌)_ 이찬/ 문학평론가

   죽음이라는 '절대적 타자성'의 시간 앞에서 너덜너덜해질 수밖에 없을 우리 모두의 육신과 영혼으로 번져나가는 가공할 감염력의 불꽃을 품는다. 따라서 그것은 시인 제 자신의 실존의 역사나 제 가족사의 테두리만을 비추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공동체가 합법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무수한 폭력의 결과물인 죽음의 문제를 바닥까지 훑어볼 수 있는 광야의 들불로 타오른다. 그렇다. 『파일명 서정시』는 근대 시민사회 성립 이후 만인들이 제 생활세계에서 누리는 평균적 삶의 감각이자 지당한 권리인 민주주의를 간절한 노스탤지어의 몸짓으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던 근래 우리 사회의 어이없는 역사적 퇴행 현상들을 주도동기로 삼는다. (p.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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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2019-가을호 <제19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작 특집/ 자선 대표작/ 작품론> 에서

  *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개닦이『파일명 서정시』등 

  * 이찬/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