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에 관한 보고
천융희
빛이 소환되지 않는 긴 암반의 시작점
굴착된 터널은 다각적이지 않다
뚫어지게 바라보면 추월도 분절도 없다
내일의 경계가 보호한 도시의 밤
이곳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다만
되풀이되는 관습처럼 바람의 회전문을 궁굴린다
슬그머니 들어섰다가 끝내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익명의 계보들
높은 회전율에 따라붙지 못한 바퀴의 속도가
집 앞 도로를
어디라도 들이박을 듯 어둠을 찢고 관통한다
한 줄 굉음이 공중분해 되는 순간이다
거친 암벽暗壁을 노련하게 더듬다 때론
역주행으로 치닫는 우리는
어쩌면 어둠의 기호인지도 모른다
무뎌진 방향을 한동안 추스르는 어스름 너머
천천히 번식하는 미명
어둠의 발목을 채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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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학』2019-가을호 <미래시학 시단Ⅲ>에서
* 천융희/ 경남 진주 출생, 2011년『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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