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다
이명
거미다. 거미가 기어간다. 소리도 내지 않고 장판을 가로지른다. 거미다. 거미가 기어간다. 거미줄을 친다. 천장으로 올라가 거미줄을 친다. 나는 빠짐없이 바라보고 있다. 반투명한 거미줄 끝에 붙어 가만히 있다. 거미다. 거미가 다가온다. 거미가 나를 칭칭 동여맨다. 움직이지 못한다. 숨도 쉬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계속해서 바라만 본다. 거미가 나를 포박한다. 그래. 오너라. 그래. 나는 기다린다. 거미가 나를 먹어주기를. 어서 나를 먹어주기를. 충분히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관심이 없다. 내팽개친다. 나를 내팽개쳐 둔다. 넓디넓은 거미줄 위. 달랑 나 혼자. 버려진 먹잇감. 그 사실이 자못 서럽다. 눈물을 흘린다. 목이 메여 엉엉. 끈적거리는 거미줄 위에서.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엉엉. 거미줄만 초라하게 출렁인다. 거미다. 거미가 기어간다. 나를 두고. 저 멀리. 나를 두고. 기어간다. 눈물을 닦고 조용히 일어나 거미를 밟는다. 기분이 좋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다.
* 시집 『루’s』에서/ 2010. 9.10 도서출판 시와세계(T. 02-745-7276)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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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 1985년 인천 출생, 2008년『시와세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