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모래시계/ 김추인

검지 정숙자 2010. 10. 5. 01:15

 

   모래시계 


     김추인



   한 생이 다른 생을 밀고 가는 세상이 있습니다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면서 거기 착지할 바닥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밀리어 끝까지 가보다 어느 지점에선가는 뛰어내려야 하는 모래의 시간이 있습니다


   거꾸로 뒤집히면서 비로소

   다시 뛰어내릴 수 있는 힘이 축적된다는 거

   앞서거니 뒤서거니 위의 생이 앞의 생을

   밀어주기도 받쳐주기도 한다는 거


   한 알 한 알 그 지점에 닿기까지 닿아서 낙마하기까지 바닥에 손 짚고서야 가슴 저리게 오는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눈부신 나중이 있다고 믿는 일

   착각의 힘이여 신기루여

   그대들 없이 무슨 힘으로 날마다 물구나무 설 수 있으리


   하루 스물네 번씩이나 몇 십 몇 백 번씩이나 뒤집히면서 깨지면서 찰라 또 찰나를 제 생의 푸른 무늬 짜 나가는 것은


   죽어서도 그리울 개똥밭에서

   쳇바퀴 돌며 뒤집히고 넘어지는 우리 모래의 시간에도 기다릴 것이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한 번 손잡은 일 없이도

   함께 세상 끝까지 가보다 뛰어내리는 모래의 시간이 있습니다

 


     *시집『프렌치키스의 암호』에서/ 2010.9.20 도서출판 시와시학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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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추인/ 경남 함양 출생,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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