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얼룩무늬 화물/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11. 11. 3. 19:52

 

 

    얼룩무늬 화물

 

      정채원

 

 

  지푸라기로 가득한 인형의

  가슴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강철 스프링처럼

  화물상자는 개봉되는 순간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해석도 넘어서는

  외부는 간결하다

 

  빗속에 번들거리며

  얼룩이 부풀어오르는 그 포장은

  어딘가에서 잿빛으로 혹은 붉은 빛으로

  표정을 바꿀지도 모른다

  가장 불행한 시기에

  가장 익살스러운 극본을 쓴 작가가 있다

 

  쓰다 만 명세서와 거친 매듭으로 봉인된 상자 속

  이름을 알 수 없는 짐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지

  이따금 등 뒤가 들썩거린다

  벽을 긁는 소리도 들린다

 

  뼈마디 쑤시는 독감을 앓고 난 다음날, 혹은

  오래도록 사랑하던 누군가를 갑자기 떠나보낸 뒤

  천천히 한쪽 얼굴을 지우는 연습을 하는 저녁

  달리는 화물의 무게가 조금 달라진다

 

  우리 안을 서성거리는 울음소리

  머지않아 당도할 목적지를 예감하며

  눈을 감았다 주먹을 쥐었다 하고 있다

  철저히 보호된 고독 속에서

  한 생을 마쳐야 할 멸종위기의 짐승처럼

 

  어둠이 만지고 간 것은 믿을 수 없다

 

 

  * 격월간 『유심』2011.11-12월호 <유심시단>에서

  *정채원/ 서울 출생,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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