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무늬 화물
정채원
지푸라기로 가득한 인형의
가슴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강철 스프링처럼
화물상자는 개봉되는 순간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해석도 넘어서는
외부는 간결하다
빗속에 번들거리며
얼룩이 부풀어오르는 그 포장은
어딘가에서 잿빛으로 혹은 붉은 빛으로
표정을 바꿀지도 모른다
가장 불행한 시기에
가장 익살스러운 극본을 쓴 작가가 있다
쓰다 만 명세서와 거친 매듭으로 봉인된 상자 속
이름을 알 수 없는 짐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지
이따금 등 뒤가 들썩거린다
벽을 긁는 소리도 들린다
뼈마디 쑤시는 독감을 앓고 난 다음날, 혹은
오래도록 사랑하던 누군가를 갑자기 떠나보낸 뒤
천천히 한쪽 얼굴을 지우는 연습을 하는 저녁
달리는 화물의 무게가 조금 달라진다
우리 안을 서성거리는 울음소리
머지않아 당도할 목적지를 예감하며
눈을 감았다 주먹을 쥐었다 하고 있다
철저히 보호된 고독 속에서
한 생을 마쳐야 할 멸종위기의 짐승처럼
어둠이 만지고 간 것은 믿을 수 없다
* 격월간 『유심』2011.11-12월호 <유심시단>에서
*정채원/ 서울 출생,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양루(安養樓)에서/ 김승기 (0) | 2011.11.06 |
---|---|
폭포/ 김추인 (0) | 2011.11.04 |
기계들의 방/ 황정산 (0) | 2011.11.03 |
정오의 꽃/ 오시영 (0) | 2011.10.04 |
꿈틀거리는 미끼/ 황희순 (0) | 2011.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