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입양/ 최춘희

검지 정숙자 2011. 8. 6. 23:09


    입양


    최춘희



  태어나기도 전에 너는 버려졌지

  공중화장실 변기 속이 너의 고향이지

  눈도 코도 입도 지워진 채 오직 배설의 형태로

  오물덩어리로 무뇌아로 존재하는

  도시의 치부


  세상의 호적에 너는 없다

  태어나기도 전에 깜깜한 밤하늘에게

  입도선매되었으므로


  사산된 배를 끌어안고 어미는 오늘도

  어둠의 시궁창 헤매 다니지

  티끌만큼도 죄책감이나 후회는 없지


  지하철 사물함에서 여행 가방에

  쑤셔 박힌 채 담겨진 너를 발견한대도

  결코 놀라지 않지

  티브이에서 요란을 떨며 카메라를 비춰도

  그건 일회성 쇼! 쇼! 쇼!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으로부터

  너는 버려졌지 아무도 네게 관심 따위 없다는 걸

  나무 늦게 깨달았지


  세상의 호적에 이름 올리지 못한 대신

  저 흰 구름에게, 자유로운 바람에게, 여름비에게

  이제 막 꽃잎을 여는 나팔꽃에게

  나를 데려가 줘


 

  *문학 무크『시에티카』2011 하반기-5호에서

  *최춘희/ 경남 마신 출생, 1990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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