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만종/ 김남호

검지 정숙자 2011. 6. 25. 03:13

    만종


    김남호



  둥근 종소리가 저녁강을 건너오면

  어머니는 동그랗게 등을 말고 이름을 쓰네

  밀린 숙제를 하듯이 방바닥에 엎드려

  이름을 쓰네 연필 끝에 침을 묻혀

  오래 전에 죽은 형들의 이름을 쓰네

  두 살 때 죽은 여섯 살 때 죽은 마흔 일곱에

  죽은 형들의 이름을 차례로 쓰네

  어쩌자고 저들을 불러오는가, 나는

  귀를 틀어막고 종소리를 온몸으로 밀어내네

  천근의 종소리는 끄떡도 않고

  느릿느릿 강을 건너오고

  돌을 갓 지난 형과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형과

  오십을 바라보는 형이 차례차례 강을 건너오고

  어둠이 출렁이는 방바닥에 엎드려 어머니는

  느릿느릿 또 이름 하나를 쓰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침으로 쓰네 나도 처음 보는

  내 이름을 쓰네

 


  *『시작』2011-여름호 <신작시>에서

  * 김남호/ 경남 하동 출생, 2005년『시작』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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