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무릎이 없는 한철/ 최형심

검지 정숙자 2011. 6. 13. 01:37

 

   무릎이 없는 한철


     최형심



  그리움도 한철, 나의 저녁을 거니는 바람이 더는 미풍이 아니다. 너

없는 하루는 천년처럼 침묵하여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또 한 해가 졌

다. 발아래 가을은 넘쳐도 내내 여물지 못해 거리에서 한철 바람에 기댈

뿐, 상처 없는 꽃은 없다. 소음과 고요 사이 은단풍나무가 소진한 열병

이 붉다. 벽을 기는 잎들은 모가지를 떨군다.


  옛집 문고리를 놓고 가는 바람의 손목을 붙잡고, 안쪽의 울음을 당겨

홀로 단단해지고 싶었다. 낯선 말들이 발등을 스쳐가고 숨바꼭질에 지

친 여우볕이 잠든 그곳, 나는 어떤 절기(節氣)로 다가가 당신을 움트게 했

나. 날것의 그늘로 보랏빛 저녁이 달려든다. 뒤란을 돌아 나오는 그을음

묻은 저녁바람은 그렇게 나를 불러 세웠다.


  혼자 가늠하는 두 저녁 사이의 뼈. 나는 무릎으로 우기(雨氣)에 이르러,

당신의 맨발을 기억했다. 당신의 눈동자는 붉다, 아니 따스하다. 누구의

이마를 빌어 겨울눈을 새길까, 다시 깨어나야 하는 잠이 쓰다. 이 모든

통증을 쓰다듬으며 나는 또 저물어간다.



  *『현대시』2011-6월호 <신작특집>에서

  * 최형심/ 부산 출생, 2008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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