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정물화
이화은
그에게 날개는 문학이었을까 다만
한 시대를 건너가는 꿈이나 이상의 기호였을까
찢어진 방충망 틈으로 미끄러진 낯선 베란다
그 돌발상황 속에서 새는 날개를 믿지 않았다
온몸을 돌멩이로 똘똘 뭉쳐
유리창에 마구 던졌다 던지고 또 던지고
한쪽 창문을 열어 주었지만
이미 자학의 재미를 알아버린 듯
애시당초 탈출은 그의 목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피 묻은 유리창은 자꾸 새를 불었다 돌멩이를 불렀다
피 묻은 허공이 자주 투신을 불러들이듯
어찌 잘못 움직이면
저 투석의 속도가 더 빨라질까 봐
나는 내가 아닌 척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람이 아닌 척,
날개가 아닌
내가 아닌
사람이 아닌 것들이 그날
초가을 햇살의 맑은 화폭 속에
대책 없이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월간문학』2015-8월호 <이달의 시> 에서
* 이화은/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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