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집
마경덕
저 집이 고요하다
노련한 주인은 바람의 목까지 벤 전적(前積)이 있다
팔을 휘두르던 무사(武士)는
끝내 집에 들지 못하고 칼만 제 집으로 돌아왔다
과업을 마치고 싸늘히 식은
침묵을 달아보니 사백 년이다
저 잠을 깨우면 잠복한 살의(殺意)가 튀어 나와
누군가의 목을 겨냥하리라
비명을 맛본 칼은 피맛을 잊지 못한다
눈을 가리고 정확히 급소를 찾아낸 사내처럼
집이 열리면
단칼에 어둠의 목까지 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부로 나서지 않는 칼
칼집도 제 몸에 꼭 맞는 몸만 모신다
둘은 혈연의 관계,
더러 길을 놓치는 천형(天刑)도 있어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늙은 어미처럼
빈 칼집은 불안하다
칼날끼리 불꽃을 토하는 칼
미쳐 날뛰는 기운도 집에 들면 온순하다
칼을 달랠 수 있는 건
칼집뿐이다
*『월간문학』2015-8월호 <이달의 시> 에서
*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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