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칼집/ 마경덕

검지 정숙자 2015. 8. 1. 15:14

 

 

      칼집

 

       마경덕

 

 

  저 집이 고요하다

  노련한 주인은 바람의 목까지 벤 전적(前積)이 있다

  팔을 휘두르던 무사(武士)는

  끝내 집에 들지 못하고 칼만 제 집으로 돌아왔다

  과업을 마치고 싸늘히 식은

  침묵을 달아보니 사백 년이다

  저 잠을 깨우면 잠복한 살의(殺意)가 튀어 나와

  누군가의 목을 겨냥하리라

  비명을 맛본 칼은 피맛을 잊지 못한다

  눈을 가리고 정확히 급소를 찾아낸 사내처럼

  집이 열리면

  단칼에 어둠의 목까지 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부로 나서지 않는 칼

  칼집도 제 몸에 꼭 맞는 몸만 모신다

  둘은 혈연의 관계,

  더러 길을 놓치는 천형(天刑)도 있어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늙은 어미처럼

  빈 칼집은 불안하다

  칼날끼리 불꽃을 토하는 칼

  미쳐 날뛰는 기운도 집에 들면 온순하다 

  칼을 달랠 수 있는 건

  칼집뿐이다

 

 

   *『월간문학』2015-8월호 <이달의 시> 에서

   *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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