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의 시(詩)
이원오
이 유전자는 피와 동반하여 왔다
몸에 배인 긴 피의 행렬은 몸에만 있지는 않다
갑골이라고 붙여진 짐승의 뼈에서 피의 암호를 찾아낸다
창을 들고 에워싸며 호랑이와 싸우는 것을 놀이(戱)라 하였으니
이 유전자의 근본은 야생이다
회자수가 살아있는 사람을 칼로 내리쳐 육장(肉醬)을 만들고 있다
피가 사방으로 튄다 야만이다
갓 태어나 피가 묻어있는 아기를 삼태기 속에 넣어 내다 버린다
야만의 다른 말이다
몸엔 야생과 야만의 피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유전자를 정화하려면 시로 씻을 수밖에 없다
시는 그러므로 야만의 피라고 읽혀진다
그 먼먼 청동기시대의 시경(詩經)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
피는 튀었고, 번졌으며, 맑아지고 있다
정화의 시다
*『시와표현』 2015 - 여름호 <신작시 광장시단>에서
* 이원오/ 2014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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