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귀향
김윤배
*
불룩해진 욕망으로 꽃의 귀향이 이루어진다
지상에 색색의 그림자를 남기고 돌아간 꽃의 영혼을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른다
돌아가던 꽃이 뒤돌아보며 슬퍼하지 말라고, 다시 찾아올 거라고 위로한다
꽃의 말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내년이면 얼마나 먼가
그 먼 날을 기다릴 수 있을까
어둠 속에 꽃을 그리며 소리 없이 운다
눈물이 어둠 속의 꽃으로 핀다
꽃은 끝내 내게로 귀향할 것이다
*
수 없는 꽃 무덤을 꽃으로 가꾼다
-전문-
▶ 한때의 것에 보내는 인사(부분)_빈속/ 고려대 교양교육원 강사
"어둠 속에 꽃을 그리며 소리 없이 운다"에서 '어둠'은 '마음의 어둠'을 의미한다. "눈물이 어둠 속의 꽃으로 핀다"에서 '꽃'은 시詩를 의미한다. 그 시는 슬픔으로 정화된 시적인 마음이자 슬픔의 승화를 통해 도달한 심미성이다. "꽃은 끝내 내게로 귀향할 것이다"는 이 시의 절정이다. "내게로 향하는 꽃의 귀향"은 현실에서 사라진 꽃이 시인의 마음으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새로운 실재성을 얻는 것을 뜻한다. 시인의 마음은 새로운 실재가 된 꽃을 위한 새로운 집이 된다. 이것으로 시인은 꽃과 동화同化를 이룬다. 눈앞에서 사라진 꽃을 마음에 받아들임으로써, 시인은 꽃과 함께 꽃의 마음으로 살면서 꽃의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슬픔을 길 삼아 마음에 들어온 그 꽃은 그곳에서 시인을 위한 뮤즈가 된다.
"어듬 속에서 꽃을 그리며 소리 없이 운다// 눈물이 어둠 속의 꽃으로 핀다// 꽃은 끝내 내게로 귀향할 것이다"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꽃의 귀향'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비유로 본 앞의 맥락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떨어진 꽃이 아니라 떠나간 누군가가 된다.
' * ' 표시로 분리된 독립적 연인 "수없는 꽃 무덤을 꽃으로 가꾼다"를 보자. 이 구절은 앞의 비유적 맥락에서는 수많은 꽃으로 장식된 영정 앞에 꽃 한 송이 더하여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꽃 무덤'은 꽃이 질 때마다 슬픔에 사로잡혔던 시인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인은 그곳을 꽃으로 새롭게 가꾼다. 시인의 마음은 이제 꽃의 무덤이 아니라 꽃의 집 또는 꽃의 신전이 된다. (p. 시 180/ 론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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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봄(93)호 <신작소시집/신작시/ 작품론> 에서
* 김윤배/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겨울 숲에서』『떠돌이의 노래』『부론에서 길을 잃다』『내가 너에게 사랑한다 고백한 말은』외, 장시집『사당 바우덕이』『시베리아의 침묵』『저 미치도록 환한 사내』등
* 빈속/ 2003년『동행문학』에서 <그림형제 민담 읽기>로 작품 활동. 현) 고려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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